어제저녁에 닭가슴살 볶음밥 한번 해보려고 했음. 헬스 갔다 오면 단백질 챙겨야 되는데 밖에서 사 먹기는 아깝고, 그냥 집에 있는 걸로 원팬으로 끝내자 싶었음.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 무게 좀 올려보겠다고 낑낑대다 왔더니 배는 고픈데 팔은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였음.
씻고 나와서 냉장고 열어보니 닭가슴살 남은 거랑 계란 두 알, 밥 한 공기 있길래 그냥 다 때려넣기로 함. 배달앱 켰다가 최소주문금액 채우려면 뭘 더 시켜야 되는 게 싫어서 도로 닫음. 배달비 생각하면 그냥 있는 걸로 해 먹는 게 언제나 답임.
계량은 원래 안 함. 감으로 함. 근데 어제는 그 감이 완전히 나갔음. 간장이랑 굴소스 대충 두르고 밥 볶다가 짜다 싶어서 물을 부었는데, 그게 시작이었음. 물 붓는 순간부터 볶음밥이 아니라 죽 쪽으로 가고 있었던 거임. 인덕션이 1구짜리라 냄비 하나 더 꺼내서 옮겨 담을 여유도 없음. 그냥 그 팬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되는 구조.
불을 줄였어야 했는데 안 줄임. 그냥 계속 볶으면 수분 날아가겠지 하고 냅둠. 근데 그 타이밍에 갑자기 밖에서 비가 후두둑 쏟아짐. 창문 열어놓은 게 생각나서 불도 안 줄이고 그대로 뛰어감. 베란다도 없는 원룸이라 창틀에 놔둔 빨래건조대까지 다 젖게 생겼길래 정신없이 옷가지부터 걷음. 창문 닫고 몇 초 서서 비 구경하다가 아 맞다 불 하고 그제야 부엌으로 돌아옴.
돌아와보니 팬 밑이 새까맣게 눌어붙어 있었음. 연기까지 살짝 올라오고 있었고 탄내가 훅 끼침. 원룸이라 냄새가 순식간에 방 전체로 퍼짐.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다시 열어야 되는데 밖은 여전히 비 오는 중이라 그것도 못 함 ㅋㅋ 결국 방문 열고 화장실 환풍기 켜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서 있었음. 이불에도 냄새 밴 거 같아서 오늘 아침까지 좀 남아있었음.
결국 그 볶음밥 반은 버림. 탄내 나는 밥을 억지로 넘길 자신은 없었음. 원팬으로 끝내려고 시작한 건데 눌어붙은 자국 벅벅 닦아내느라 오히려 설거지가 더 늘어남. 수세미로 아무리 문질러도 바닥 코팅 벗겨질까 봐 세게도 못 밀고, 애매하게 힘 조절하면서 한참 씻음. 이럴 거면 걍 냄비 두 개 쓰는 게 나았을 수도 있음.
배는 고픈데 다시 뭘 만들 기력은 없어서 편의점 감. 비는 그새 조금 잦아들어서 우산도 안 쓰고 그냥 뛰어감. 세븐일레븐 들어갔더니 이번 주에 새로 나온 마늘불고기&함박 도시락 있길래 그거 집음. 마늘불고기랑 함박이 같이 들어있어서 단백질은 어느 정도 채워지는 느낌이었음. 가격도 딱 부담 없는 선. 원래 이런 거 잘 안 사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만들고 싶었음. 전자레인지 돌리는 동안 편의점 앞 처마 밑에서 비 그치는 거 잠깐 구경함.
며칠 전에는 CU에서 부추겉절이 얹은 비빔밥도 본 적 있음. 그날은 그냥 지나쳤는데 이름만 보면 괜찮아 보이긴 했음. 다음에 또 눌어붙히면 그거 사러 갈지도. 편의점 냉장 코너 앞에서 뭐 살지 고민하는 시간이 요즘 은근 늘어난 느낌임, 딱히 나쁘진 않음.
먹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첫판도 사실 이런 식으로 태워먹었었음. 그때는 라면이었는데 물 양을 눈대중으로 하다가 다 졸아서 냄비 바닥 긁는 소리 나던 거 아직도 기억남. 그날은 국물도 거의 없이 짜서 물을 다시 부었다가 이번엔 싱거워지고, 그렇게 몇 번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이상한 맛으로 완성됐던 걸로 기억함. 원룸 인덕션이 화력 조절이 세밀하게 안 돼서 조금만 딴짓해도 훅 가버림. 강, 중, 이렇게 두 단계밖에 없는 것 같은 체감임.
비는 그새 그쳤음. 창밖 보니까 도로 젖어있고 사람들 우산 접고 있는 게 보임. 아까 걷어놓은 빨래는 다시 밖에 널어야 되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방 안에 둠. 팬은 아직 개수대에 담가놓은 채로 있음.